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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2198

신청리 고인돌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신의실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으로 충주 신청리 고인돌은 마을에서는 거북바위로 불린다. 마을에는 2기의 거북바위가 있었는데, 여성을 상징하는 거북바위는 마을 앞을 지나는 개울의 제방 공사 때 파괴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남성을 상징하는 거북바위라고 한다. 충주 신청리 고인돌은 신의실마을 입구 밭 가운데에 위치한다. 1998년 12월 5일 김양규가 처음으로 보고하여 학계에 알려졌다. 요도천 상류 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구덩식 고인돌로 확인되었다. 구덩식의 구조로 혼성편마암으로 보이는 덮개돌은 해발 159m 신의실마을 뒷산인 바위산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산은 고인돌과 659m 떨어져 있으며, 방위각은 280°이다. 덮개돌의 윗면에는 145개의 구멍, 즉 .. 2024. 2. 5.
조동리 고인돌 충주 조동리 고인돌(忠州 早洞里 支石墓)은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청동시대의 고인돌이다. 2001년 9월 14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었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충주 조동리의 지석묘는 조동리 탑평마을 중심부에 위치하며 민가에 둘러싸여 있다. 여러 개의 자연돌을 고임돌로 사용하고 그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바둑판식 고인돌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특히 다른 지방의 고인돌과 달리 덮개돌 위에 평면 타원형의 돌을 올려 놓아 3.. 2024. 2. 5.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보물 제359호)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碑)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의 비석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59호로 지정되었다. 정토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개천산에 있었던 절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를 세운 태조로부터 국사의 예우를 받았던 법경대사 현휘(玄暉)가 주지스님으로 있다가, 그의 뒤를 이어 홍법국사가 제자들을 지도하였던 대사찰이다. 홍법국사의 탑비로 원래 정토사터에 남아있던 것을 1915년에 홍법국사 실상탑과 함께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홍법국사는 통일신라 신덕왕대에 태어나 12살의 나이에 출가하였고, 당나라를 다녀온 뒤 선(禪)을 크게 일으켰다. 그.. 2024. 2. 4.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보물 제17호)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忠州 淨土寺址 法鏡大師塔碑)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정토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비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정토사터에 전하고 있던 비(碑)로, 신라말·고려초의 승려 법경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토사는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법경대사가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태조 24년(941)에 입적하자, 그의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비는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당시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비받침에 새겨진 거북조각이나 머릿돌의 용조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 앞면의 중앙에는 ‘법경대사’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비의 몸돌에는 대사의 행적이 자.. 2024. 2. 4.
영모사 충주 영모사(忠州 永慕祠)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당이다. 1998년 1월 9일 충청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최씨의 시조인 최승과 선조 8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최승은 신라 문성왕 8년(846)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많아지자, 중국 당나라 무종(武宗)의 명을 받아 이들을 무력으로 평정하였다. 또한 통일신라 진성여왕 3년(889)에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수습하였다. 영모사는 남쪽을 향해 있으며 앞쪽에 있는 문은 가운데를 높힌 솟을대문이고 최승이 살았을 때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석교가 있다. 2024. 2. 4.
연안이씨 쌍효각 충주 연안이씨 쌍효각(忠州 延安李氏 雙孝閣)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2005년 3월 11일 충청북도의 문화재자료 제4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연안이씨 쌍효각은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의 국도 제19호선변에 있다. 쌍효각 내용에 따르면 이시희(李時熙), 이시걸(李時杰) 형제는 연안 이씨 문강공인 이석현의 4세손으로 부친과 모친의 상을 당하자 형제가 함께 정성을 다해 시묘하였고, 임진왜란이 발생한 당시에서도 시묘를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이 둘의 효성을 참작해 조선 경종 2년(1722)에 이 두 형제가 살고 있던 자리인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에 명정된 정려이다. 원래 충주 연안이씨 쌍효각은 1722년 정려가 명해져 1878년 살미면 신당리에 세워졌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살미면이 수몰이 되.. 2024. 2. 3.
경종 태실 충주 경종 태실(忠州 景宗 胎室)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경종의 태실이다. 1975년 8월 20일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6호 경종대왕태실(景宗大王胎室)로 지정되었으나, 2013년 1월 18일 현재의 문화재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태실(胎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모시는 곳으로, 이곳은 조선 경종의 태를 모시고 있었다. 대개는 태항아리 안에만 두는 것이 보통이나, 왕세자나 왕세손 등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의 태는 따로 돌방을 만들어 그 안에 넣어두게 한다. 이 태실은 8각의 낮은 받침돌 위로 둥근 돌방을 올리고 8각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경종대왕 태실비에 의하면 경종이 1688년(숙종 18) 10월에 태어나자 이듬해 2월에 태장하였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 옆에.. 2024. 2. 3.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보물 제16호)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忠州 億政寺址 大智國師塔碑)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억정사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비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억정사지(億政寺址)에 전해오는 비(碑)로, 고려의 승려인 대지국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문을 새긴 몸돌이 올려진 단순한 형태로, 몸돌 윗쪽의 양 끝을 사선으로 잘라냈을 뿐 다른 꾸밈은 없다. 비몸돌의 네 면에는 해서체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친 과도기적 작품으로, 조형상으로는 간략한 형식이다. 비문에는 대지국사가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태어나 14세에 출가하고 공양왕 2년(1390)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하고, 대사의 인품과 학력을 기리는 내.. 2024. 2. 3.
추평리 삼층석탑 추평리 삼층석탑은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탑평마을에 있는 석탑이다. 현재는 지방도 제531호선을 지나는 바로 옆의 민가와 논 사이 한가운데에 석탑만 홀로 남아 있다. 원래는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전기인 11세기 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탑의 총 높이는 2.3 m이나 현재는 기단부는 땅 아래에 묻혀 있고 단층 기단 위의 탑신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갖춘 일반형 석탑으로 2매로 조립된 갑석 위에 초층탑신이 안정감있게 올려지고 탑신의 양쪽에 우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낙수면은 급하며 옥개에는 전각의 반전이 있으며 탑신괴임은 생략되었다. 옥개의 양쪽 끝에는 풍경원공의 흔적이 있고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다. 상륜부에는 복발로 보이는 부재가 남아있다. 추평리 .. 2024. 2. 2.
누암리 고분군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에 있는 신라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고분군으로 1980년 중원 문화권 설정을 위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고, 1983년 3월 30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었다. 1989년에 돌방[석실] 1호분과 2호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1990년과 1991년에는 28기의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石室墳]과 고려시대의 돌덧널무덤[石槨墓]과 움무덤[土壙木棺墓]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중심부의 작은 범위에서만 봉토를 확인할 수 있는 무덤이 76기나 되고, 반경 1.5㎞ 이내에서 약 23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고분의 형식 가운데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굴식 돌방봉토분[橫穴式 石室封土墳]이며,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 石室墳]도 있다. 가장 주목되는 무덤은 1호분으로 둘.. 2024. 2. 1.
창동리 마애여래불상 충주시 중앙탑면의 자연 암벽 위에 얕은 선으로 새겨진 마애불이다. 높이는 4m이며 불상의 중앙 부분이 철 성분으로 인해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얕은 부조로 조각하고 손을 표현하지 않는 등 고려시대 지방색이 나타난다. 또한 강물 위에 뜬 배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독특한 위치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수운의 안녕을 기원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와 얼굴 부분은 낮게 양각하였으며 어깨 이하는 거의 음각선으로 처리하였다. 머리는 소발이며 얼굴은 살이 쪄 풍만한 모습으로 나타냈고 코도 큼직하게 표현되었다. 귀는 길게 나타내어 어깨에 닿아 있고 머리에 비해 양 어깨는 좁고 목에는 삼도가 또렷하다. 눈썹은 동그랗게 표현되어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눈은 일직선으로 표현하였다. 눈꼬리는 찢어진 듯하고 입가에.. 2024. 2. 1.
임충민공 충렬사 1969년 11월 24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8년에 중수하였다. 1679년(숙종 23), 억울하게 죽은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林慶業)을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측면 3칸 중 뒷면 2칸에 우물마루를 깔고 장군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앞면 1칸은 참배공간으로 꾸몄다. 2층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과 배흘림 형식의 둥근 기둥을 세우고 겹처마 팔작지붕을 얹었다. 1727년(영조 3) 충렬사(忠烈祠)의 사액(賜額)을 받았다. 1747년(영조 23)에는 부인 전주이씨의 정렬비를 세웠으며 1791년(정조 15)에는 달천 충렬사비를 건립하였다. 임경업(1594∼1646)은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1594년(선조 27) 이곳 충주 대림산 기슭에.. 2024. 1. 31.
세상을 보다 2024. 1. 30.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보물 제656호) 청룡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뚜렷하게 알 수 없고, 현재 절의 옛모습을 짐작해 볼 방법이 없다. 옛터에는 석등과 함께 보각국사의 사리탑과 탑비만이 서 있을 뿐이며, 현재의 청룡사는 옛터의 북쪽에 자리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자를 조각하였는데, 이 때문에 사자석등이라 부른다. 사자의 등에 얹어진 가운데받침은 기둥모양으로 4각의 낮은 돌을 두었다. 화사석은 4각으로, 네 모서리를 둥근기둥처럼 조각하였고, 앞뒤로 2개의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2024. 1. 29.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보물 제658호) 청룡사 옛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인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보각국사 혼수(1320∼1392)는 도를 지킴에 조심하고, 특히 계율을 따를 것을 강조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2세에 출가하여 22세 때에는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29세 때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청룡사로 옮겨가 머물렀다. 여러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조선 태조 1년(1392) 청룡사로 돌아와 73세에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내려 ‘보각국사’라 하고, 탑이름을 ‘정혜원융’이라 하였으며, 청룡사에 대사찰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비는 1장의 돌로 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돌이 서 있는데, 위로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접듯이 깎아 마무리해 놓았다. 조선 .. 2024.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