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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2198

월악산 미륵리 대원지 석조 귀부 사찰의 남북 종축선에서 약간 좌측에 위치하여 북향하고 있으며 길이 605m 높이 180cm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북모양 받침이다. 귀갑문은 생략하였으며 좌측 어깨 부분에 작은 거북 두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형태를 양각하였고 앞쪽의 발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형식화 되었다. 귀부의 등 가운데에 비좌가 있으나 비를 세울 수 있는 정도는 아니며 수차례 발굴조사에서 비석 조각조차 찾지 못했음을 볼 때 원래 비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2024. 2. 14.
월악산 미륵리 대원지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깃발을 매다는 장대를 고정하기 위한 장치로 보통 사찰의 입구에 세워 신성한 지역임을 나타낸다. 현재 지주와 간대로 보이는 석재가 남아있는데 간대 위 면에는 2중의 원각선을 양각하였다. 지주는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전체 크기를 알 수 없으나 윗부분 바깥면에 6엽 연화문을 양각한 것은 희귀한 예이다. 통일신라시대보다 상대적으로 폭이 넓고 높이가 낮은 고려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2024. 2. 14.
미륵대원지 석등 각 부분이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상·중·하로 이루어진 3단의 받침을 마련하여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한 돌로 이루어졌으며,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둘렀다. 가운데기둥은 적당한 높이에 간결한 모습이다. 윗받침돌에는 아래받침돌과 대칭되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불빛이 퍼지도록 4면에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려졌다. 꼭대기에는 8각의 낮은 받침 위에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2024. 2. 14.
문주리 요지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소재로 조선 후기 기와가마터이다. 살미에서 괴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으로 문강리 문산마을 앞에서 팔봉으로 가는 도로로 접어들면 팔봉마을에 이른다. 충주 문주리 요지는 팔봉마을 입구 오른쪽 달천강변 강안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충주 문주리 요지는 밭을 갈다가 사람이 빠지면서 확인되었다. 1985년 충주공업전문대학(현 충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기와를 굽던 가마터로 확인되었다. 가마의 규모는 남북 길이 12m, 폭 1.8m로 작은 편이다. 강안의 자연 경사면과 단구상의 지형 조건을 이용하여 남에서 북으로 오르는 단상 하부 지면을 파내 아궁이를 만들었으며, 단상부를 이용하여 소성실을 경사지게 만들었다. 소성실과 아궁이는 생토층을 .. 2024. 2. 13.
팔봉서원 충주 팔봉서원(忠州 八峰書院)은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이다. 2003년 6월 13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팔봉서원은 조선시대 명현(名賢)인 이자·이연경·김세필·노수신 등 4현을 모신 서원으로 후생교육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팔봉서원은 조선 선조 15년(1582)에 건립되었고, 현종 13년(1672)에 나라에서 ‘팔봉서원(八峰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8년(1871) 전국적으로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폐원되었다가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8년 전통양식으로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출입문은 솟을삼문(三門)형태로 ‘팔봉서원’의 현판이 걸려 있.. 2024. 2. 13.
상고대 상고대는 서리가 나무나 풀 따위 물체에 들러붙어 얼어붙은 것이다. 수빙(樹氷), 수가(樹稼), 무빙(霧氷)이라고도 한다. 2024. 2. 12.
장독대 우리 장독의 역사는 음식 보관의 역사와 함께한다. 채집과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잉여 곡식과 부식을 저장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수분을 증발시켜 건조하는 방법에서 소금으로 절이고 발효시키는 저장법으로 발전함에 따라 그것을 담는 용기인 옹기도 함께 생겨났다. 오늘날 패스트푸드에 반대하여 전세계적으로 슬로푸드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의 김치, 고추장, 된장, 젓갈, 장아찌 등이야말로 여기에 걸맞은 음식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서양의 치즈, 요구르트에 뒤지지 않는 발효식품의 종주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옹기의 발달 덕이다.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와 같은 새로운 도자기가 만들어졌으나 서민들의 친근한 벗은 역시 옹기였다. 2024. 2. 12.
충주 두정리 고구려 고분군 충주두정리유적은 2007년 발굴조사결과 고구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들이 발견되었다. 유적에서 확인된 유구로는 고구려의 횡혈식 석실분 6기가있다. 달천과 가까운 평탄지에 입지하며 횡방향으로 나란하게 배치된 형태이다. 출토 유물로는 비교적 많은 관정과 2호와 6호분에서 출토된 단경호, 장동호, 4호분의 은제 지환 등이 있다. 이들 석실분과 출토 유물을 통해 고구려의 충주 경영이 최소한 1세대 이상 계속된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유구로는 소성유구 4기, 성격 미상의 수혈 4기가 있다. 이들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단야유적으로 추정되며 두정리유적 주변의 야철지와 비교하여 검토할 수 있겠다. 출토 유물로는 소성유구에서 동이와 경질토기가, 수혈유구에서는 토제와 기와편 등이 있다. 조선중기의 유구로는 .. 2024. 2. 12.
박팽년 사우 사우(祠宇)는 선현(先賢)과 충신(忠臣), 조상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의 하나로, 대개 지방의 유림이나 지방관, 배향자의 후손 및 제자 등에 의해 세워졌으며, 사액을 청하는 소(疏)인 청액소(請額疏)를 올려 사액을 받기도 하였다. 충주 박팽년 사당은 사액되지는 않았다. 충주시 방향 국도 3호선에서 용원저수지를 지나 용원 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거나, 중부내륙고속국도 충주 IC에서 빠져나와 우회전한 뒤, 주덕 방향으로 나아가 주덕 오거리를 지나 용원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충주 박팽년 사당이 나온다. 1775년(영조 51)에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1417~1456]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968년에 중수하였으며, 1977년 충주 박팽년 사당의 입구 정문이라 할 .. 2024. 2. 11.
숭선사지 충주 숭선사는 고려 광종(光宗)의 어머니인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聖王太后) 유씨(劉氏)의 원당(願堂)으로, 본래 사지에는 당간지주만 남아 있고 주변은 경작지화 되어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이후 충주 숭선사지에서 많은 양의 기와가 출토되고, 그중 ‘숭선(崇善)’명의 기와가 출토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숭선사에 대한 문헌 기록은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954년(광종 5)에 광종이 모후(母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창건했다는 짧은 기록만이 전하고 있다. 충주 숭선사지에 대한 시굴 조사는 1995년 3월부터 4월까지 예성동호회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당시 추정 금당지, 강당지, 축대 등이 파악되면서 대규모의 사찰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이후 연차적인 발굴조사는 충청대학 박물관에서 실시하.. 2024. 2. 11.
숭선사지 당간지주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 숭선마을 충주 숭선사지 입구에 남아 있는 유적이다. 숭선마을 뒤쪽으로 형성된 골짜기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기와편과 자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이에 따라 대규모의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1981년경 사지에서 명문 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숭선사(崇善寺)임이 확인되었다. 숭선사에 대해서는 『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하여 여러 사료에 기록이 전하고 있으며, 최근 발굴 조사에 의하면 숭선사는 954년(광종 5)경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1182년(명종 12)경 대규모 중수가 이루어졌고, 조선 후기까지 꾸준하게 법등을 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숭선사지 당간지주도 고려시대 사찰 창건시 입구에 당간지주를 배치함으로써 사찰의 위상을 대내외에 선양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당간.. 2024. 2. 11.
원평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다가 병자호란 때 폐사되었다고 전하는 선조사지(善祖寺址)에 삼층석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머리에 팔각의 보개를 얹고 있는 석불입상으로, 팔각의 넓은 보개는 석등의 옥개석을 연상하게 한다. 보개의 아랫면 가장자리에는 낙수 홈이 선으로 음각되었으며, 중앙에 원형으로 돌출부를 두었다. 이 돌출부가 불신의 머리에 닿아 있어 마치 육계처럼 보인다. 머리는 나발이고 얼굴은 넙적하여 풍만하다. 눈은 반개하고 있고 입술은 도톰하며 턱 아래에 이중턱을 표현해 후덕함을 나타내고 있다. 귀는 길게.. 2024. 2. 9.
원평리 삼층석탑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忠州 院坪里 三層石塔)은 충청북도 충주시 원평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이 있는 곳은 6세기 전반기인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한 ‘선조사(宣朝寺)’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 전해진다. 2004년 4월 2일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되었다. 6세기 전반기인 신라 법흥왕때 창건한 ‘선조사(宣朝寺)’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병자호란때 소실된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이곳 마을 이름은 ‘미륵댕이’로 예부터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옥개석의 낙수면 전각(轉角)의 경쾌함과 탑신의 단아함 등에서 볼 때 신라 석탑 양식을 따른 고려시대의 수작(秀作)으로 기단 면석에 부조한 향로와 탑신에 사자(獅子)의 형상으로 여겨지는 조식은 찾아 .. 2024. 2. 9.
남산성 충주 남산성은 해발 636m의 남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두 개의 계곡 상단을 에워싼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축 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이는 ‘동악성(桐岳城)’으로 추정된다.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충주 남산성은 동악성(桐岳城, 凍嶽城)·충주산성(忠州山城)·금봉산성(錦鳳山城)·마고성(麻姑城) 등으로도 불린다. 2024. 2. 8.
코타 2024.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