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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2198

효종대왕 영릉 재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재실(齋室) 건축으로, 2007년 11월 29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문화재청이 소유,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대왕(1619~1659, 재위 1649~1659)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며, 재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 장만, 제기 보관 등의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효종대왕릉은 본래 1659년 경기도 양주군 건원릉(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서쪽에 조성하였다. 능호는 ‘익릉(翼陵)’이라 하였으며, 능 앞에는 재실을 건립하였다. 이후 1763년 석물에 틈이 생겨 능을 현재의 위치인 여주로 옮겨왔는데, 이때 능호를 영릉으로 고쳤으며 재실도 함께 옮겨왔다. 재실은 재방, 안향청, 제기고, 전사청, 행랑채(대문 포함), .. 2024. 2. 27.
세종대왕 영릉 재실 복원 재실은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9품) 등이 지내던 곳이다. 제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 제향을 분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 공간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2006년, 2017년 발굴조사 결과와 조선 후기의 문헌인 "영릉보토소등록"과 "춘관통고"의 기록을 근거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2024. 2. 24.
세종대왕 영릉 재실 재실은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9품) 등이 지내던 곳이다. 제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 제향을 분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 공간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원래 재실이 소실되어 1970년 성역과 사업 때 현 위치에 삼분과 행랑 제방 안채만 복원되었고 현재 재실이 본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2024. 2. 24.
세종대왕 영릉 조선 제4대 왕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1395∼1446)를 합장한 무덤이다.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446년(세종 28)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죽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무덤)의 서쪽 산줄기에 쌍실을 갖춘 능이 조성되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이고, 서쪽 방은 세종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하여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그러나 세조 때 영릉의 터가 좋지 않다 하여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나왔고, 1469년(예종 1) 현 위치로 옮겼다. 옛 영릉에 있던 상석·장명등·망주석·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어졌으나 197.. 2024. 2. 24.
빙산 2024. 2. 23.
태백산 주목 학명은 Taxus cuspidata S.et Z.이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며, 높이 17m, 지름 1m에 달하고, 짙은 녹색과 더불어 이식이 잘되므로 관상수로 흔히 재배하고 있다. 가지가 옆으로 퍼지고 줄기는 큰 가지와 더불어 적갈색이다. 잎은 한 개씩 나선상으로 배열되지만, 옆으로 뻗은 가지에서는 깃모양으로 배열된다. 잎은 선형으로 길이 1.5∼2㎝, 너비 3㎜ 정도이며, 끝이 갑자기 뾰족해지고 밑부분도 좁아진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에는 두 줄의 황색 줄이 있고 엽맥은 양쪽으로 튀어나왔다. 잎은 2, 3년 만에 떨어진다. 꽃은 암수가 한 나무에 달리고 4월에 핀다. 수꽃은 6개의 인편으로 둘러싸이고 8∼10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은 10개의 인편으로 싸이고 8, 9월에 빨간색으로 익는다. 종의(種.. 2024. 2. 20.
태백산 주목 학명은 Taxus cuspidata S.et Z.이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며, 높이 17m, 지름 1m에 달하고, 짙은 녹색과 더불어 이식이 잘되므로 관상수로 흔히 재배하고 있다. 가지가 옆으로 퍼지고 줄기는 큰 가지와 더불어 적갈색이다. 잎은 한 개씩 나선상으로 배열되지만, 옆으로 뻗은 가지에서는 깃모양으로 배열된다. 잎은 선형으로 길이 1.5∼2㎝, 너비 3㎜ 정도이며, 끝이 갑자기 뾰족해지고 밑부분도 좁아진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에는 두 줄의 황색 줄이 있고 엽맥은 양쪽으로 튀어나왔다. 잎은 2, 3년 만에 떨어진다. 꽃은 암수가 한 나무에 달리고 4월에 핀다. 수꽃은 6개의 인편으로 둘러싸이고 8∼10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은 10개의 인편으로 싸이고 8, 9월에 빨간색으로 익는다. 종의(種.. 2024. 2. 20.
태백산 주목 학명은 Taxus cuspidata S.et Z.이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며, 높이 17m, 지름 1m에 달하고, 짙은 녹색과 더불어 이식이 잘되므로 관상수로 흔히 재배하고 있다. 가지가 옆으로 퍼지고 줄기는 큰 가지와 더불어 적갈색이다. 잎은 한 개씩 나선상으로 배열되지만, 옆으로 뻗은 가지에서는 깃모양으로 배열된다. 잎은 선형으로 길이 1.5∼2㎝, 너비 3㎜ 정도이며, 끝이 갑자기 뾰족해지고 밑부분도 좁아진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에는 두 줄의 황색 줄이 있고 엽맥은 양쪽으로 튀어나왔다. 잎은 2, 3년 만에 떨어진다. 꽃은 암수가 한 나무에 달리고 4월에 핀다. 수꽃은 6개의 인편으로 둘러싸이고 8∼10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은 10개의 인편으로 싸이고 8, 9월에 빨간색으로 익는다. 종의(種.. 2024. 2. 20.
태백산 주목 학명은 Taxus cuspidata S.et Z.이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며, 높이 17m, 지름 1m에 달하고, 짙은 녹색과 더불어 이식이 잘되므로 관상수로 흔히 재배하고 있다. 가지가 옆으로 퍼지고 줄기는 큰 가지와 더불어 적갈색이다. 잎은 한 개씩 나선상으로 배열되지만, 옆으로 뻗은 가지에서는 깃모양으로 배열된다. 잎은 선형으로 길이 1.5∼2㎝, 너비 3㎜ 정도이며, 끝이 갑자기 뾰족해지고 밑부분도 좁아진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에는 두 줄의 황색 줄이 있고 엽맥은 양쪽으로 튀어나왔다. 잎은 2, 3년 만에 떨어진다. 꽃은 암수가 한 나무에 달리고 4월에 핀다. 수꽃은 6개의 인편으로 둘러싸이고 8∼10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은 10개의 인편으로 싸이고 8, 9월에 빨간색으로 익는다. 종의(種.. 2024. 2. 20.
겨울의 끝자락에서 2024. 2. 18.
미륵리 불두 충주시 수안보면의 미륵대원지에서 하늘재 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하는 고려시대 불상 머리로 미륵대원지 삼층석탑 옆에 완성하지 않은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높이 1.38m, 최대너비 1.18m의 화강암 재질로 제작되었으며 눈매와 입은 일자형으로 표현되었고 입은 작은편이나 입술 윤곽선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코와 입 사이에는 주름선이 음각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귀는 길고 머리는 나발이 없이 편평하게 처리되어 있다. 1980년대 후반 처음 발견 당시 거꾸로 땅에 처박혀 있었으며 2000년 도난 당한 것을 다시 찾아 자리로 돌려놓았다. 2005년 좌대를 조성하여 불두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다. 2024. 2. 16.
미륵신앙 삼국시대의 미륵신앙 미륵 신앙은 불교의 원시경전에서 유래한 것으로 소승 · 대승을 막론하고 널리 보편화되었는데, 미륵신앙은 6세기경부터 이미 삼국에 들어와 여러 가지 설화를 형성하였다. 다음과 같은 설화들이 있다. (1) 백제 무왕(武王)이 사자사(獅子寺)에 가고자 용화산(龍華山) 밑 큰 못가에 이르렀을 때 미륵 3존을 보고 경례한 다음 그 자리에 미륵사를 지었다. (2) 신라 진지왕(眞智王) 때 흥륜사의 중진자가 미륵상 앞에 나가 미륵대성(彌勒大聖)이 화랑(花郞)으로 화현(化現)하기를 비니 미륵이 작은 낭자로 나타나 7년간 세상을 빛냈다. (3) 선덕여왕 때의 승려인 생의(生義)가 도중사(道中寺)에서 꿈을 꾸고 깨어나 돌미륵을 찾아냈다. 이 사상은 삼국통일 이후에 더욱 발전하여 신라 말기에는 자칭 미륵.. 2024. 2. 15.
월악산 미륵리 대원지 석조여래입상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은 충주 수안보 미륵사지에 있는 거대한 석불입상으로 최근 보수 작업을 마치고 공개되었다 고려 초기 이 부근에서 많이 만들어진 대형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을 같이하는 석불입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비통하게 여겨 이곳까지 와서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나온 명문 기와를 통해 이곳이 미륵불을 모시는 사찰이며 원(院)을 겸하고 있는 사찰이라는 점, 1192년에 중수하였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현재 불상이 위치한 석굴사원 앞쪽에는 석등을 비롯하여 오 층 석탑, 귀부, 당간지주, 불상 대좌 등 석조물들이 남아있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이 서 있는 석굴은 평면이 반원형으로 상부를 목조 가구로 결구한 반축조 형식의 석실 사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부구.. 2024. 2. 15.
월악산 미륵리 대원지 5층 석탑(보물 제95호)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은 수안보 미륵사지 안에 있는 석탑이다. 이곳에는 고려 시대의 석불입상이 있을 뿐 아니라 이 석불을 위해서 석굴이 만들어졌던 자취가 있어 주목되고 있으며 그 앞면에 석탑과 석등이 남아있다. 현재 기단 아랫부분이 파묻혀있어 그 구조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탑신부는 4각형 중층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드러난 부분은 자연석에 가까운 네모난 돌로 특별하게 장식하지 않았으며, 그 위로 기단의 맨 윗돌이 올려져 있다. 덕이 높은 승려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세운 철제 찰간이 꼭대기에 남아있는 것이 희귀한 유례이다. 5단의 지붕돌 밑면 받침과 직선의 처마는 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른 것이며 지붕돌의 급경사와 형식적인 기둥 새김을 보아 고려 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 2024. 2. 15.
월악산 미륵리 대원지 사각석등 201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충주 미륵대원지(사적, 1987년 지정) 안에 있는 이 사각석등은 기단부, 화사석(석등의 불을 켜는 곳), 지붕돌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의 지대석은 일부 깨지는 하였으나 원래는 사각형의 판석형 석재였음을 알 수 있다. 하대석은 투박한 복판 연화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연화문은 대형으로 새겨져 있지만 돌을 다듬는 수법이 깔끔하지 못하고 다소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대석 상면에는 사각형 홈을 파고 간주석을 끼워 고정했다. 간주석은 사각평면의 석주형이다. 표면에 보주형 안상이 새겨지고, 그 안에 좌우대칭을 이루는 화형 문양이 새겨져 있다. 상대석은 하부에 앙련문을 표현하였는데, 하대석에 비하여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연화문은 복판으로 각 면이 가운.. 2024.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