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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2196

정방사 조계종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인 정방사는 해발고도 1,016m의 금수산 자락 신선봉 능선에 있는 천년고찰로 신라 시대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절에 오르면 선경을 방불케 하는 청풍호와 주변의 산들을 조망할 수 있으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법당 지붕의 3분의 1을 뒤덮은 암벽이 있는데, 그 웅장함과 기묘한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정방사 경내에는 법당과 요사, 현혜문 등이 있다. 1825년에 세워진 법당은 12칸, 요사는 5칸 규모의 목조 기와집이다. 현혜문은 절의 정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하고, 1칸 규모의 목조문이다. 법당 안에는 주존불인 높이 60cm, 어깨너비 30cm의 관음보살상이 있으며, 불상 뒤로 후불탱화가 그려져 있다. 제천 정방사 목조 관음보살 좌.. 2024. 3. 28.
옥순봉 기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의 경관이 뛰어나 소금강이라고도 하며 2008년 9월 9일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옥순봉이라고 이름붙였다. 기암괴봉이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지면서 충주호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연출한다. 연산군 때의 김일손은 《여지승람》에, 이중환은 《산수록》에 이곳의 뛰어난 경치를 칭송하였다. 단양팔경과 제천 10경에 속해 있다. 원래는 청풍군에 속하였으나, 조선초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하던 때 돌벽에 '단구동문(丹丘東門)'이라는 글을 암각하여 이곳이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주변에는 강선대와 이조대가 마주보고 있는데, 강선대는 높이 15m의 층대가 있고 대 위는 100여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다. 2024. 3. 28.
일출 2024. 3. 22.
탄금호 일출과 오리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금가면에 있는 충주댐과 충주조정지댐 사이에 형성된 인공 호수로 원래는 조정지호로 불렀으나, 현재는 부근에 위치한 탄금대의 이름을 따서 탄금호라 부르고 있다. 길이 약 15㎞, 폭 250~600m, 면적 6.2㎢ 규모의 인공 호수로서 충주댐 건설 후 좀 더 하류 쪽 남한강 본류 변에 충주조정지댐을 만들면서 생긴 호수이다. 충주호가 충주시 동부의 산지로 둘러싸인 좁은 계곡에 형성된 큰 호수라면, 탄금호는 이 산지에서 빠져나와 하곡이 급격히 넓어지면서 충주분지 내부를 관통하는 남한강을 따라 만들어졌다. 그에 따라 산지와 어우러진 충주호와는 달리, 낮은 화강암 구릉대나 저지대가 인접해 있다. 다만, 달천이 합류하는 탄금대를 지나면서부터는 동쪽으로 금가구릉대가 펼쳐진 반면, 서쪽으로는 중.. 2024. 3. 9.
유관순 생가 유관순 열사 유적인 생가지는 1972년 10월 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터만 남아 있었던 곳을 1991년 12월 초가집 본체와 부속사로 복원하였다. 생가 옆에는 박화성이 시를 짓고, 이철경이 글씨를 쓴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유관순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위치해 있다. 인근에는 유관순열사 기념관이 열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3년 4월 개관하였다. 2024. 2. 29.
3.1 만세운동 3·1 운동(三一運動) 또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 또는 대한 독립 만세 운동(大韓獨立萬歲運動)은 일제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년에 일어났다 하여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줄여서 기미운동(己未運動)이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을 계기로 고종의 인산일(장례일)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최근, 본 운동의 규모와 영향력을 고려해 3.1 혁명(三一革命)이라고 부르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민족 대표 33인으로 부르며, 이외에 만세 성명서에 직접 서명.. 2024. 2. 29.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를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복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겨레의 전당이다. 국민운동으로 추진되어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으며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에 위치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세우자는 논의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1946년 천도교회관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기념관 건설준비위원회가 결성된 것과,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주최 ‘광복30주년기념심포지엄’에서 정식 안건으로 토의, 합의하여 정부에 건의한 바도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82년 일본의 교과서에 실린 식민지 서술 부.. 2024. 2. 29.
효종대왕 인선왕후릉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왕대리에 있는 조선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張氏)의 능. 1970년 5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70년 5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 관리한다. 같은 능역 안에 있는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과 함께 동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효종의 능은 1659년(현종 즉위) 구리시(九里市)에 있는 동구릉(東九陵) 자리에 병풍석(屛風石)을 갖추어 조영하였는데,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1673년 이곳에 옮겼다. 또, 효종의 능을 이장한 이듬해인 1674년 인선왕후가 사망하여 왕릉 앞에 비릉(妃陵)을 써서 앞뒤로 나란히 쌍분을 이루게 하고 널방[玄室]은 회격(灰隔)으로 하였다. 왕릉을 옮기면서 전에 사용한 병풍석과 사대석(莎臺石)을 비로소 .. 2024. 2. 27.
효종대왕 영릉 재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재실(齋室) 건축으로, 2007년 11월 29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문화재청이 소유,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대왕(1619~1659, 재위 1649~1659)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며, 재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 장만, 제기 보관 등의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효종대왕릉은 본래 1659년 경기도 양주군 건원릉(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서쪽에 조성하였다. 능호는 ‘익릉(翼陵)’이라 하였으며, 능 앞에는 재실을 건립하였다. 이후 1763년 석물에 틈이 생겨 능을 현재의 위치인 여주로 옮겨왔는데, 이때 능호를 영릉으로 고쳤으며 재실도 함께 옮겨왔다. 재실은 재방, 안향청, 제기고, 전사청, 행랑채(대문 포함), .. 2024. 2. 27.
세종대왕 영릉 재실 복원 재실은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9품) 등이 지내던 곳이다. 제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 제향을 분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 공간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2006년, 2017년 발굴조사 결과와 조선 후기의 문헌인 "영릉보토소등록"과 "춘관통고"의 기록을 근거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2024. 2. 24.
세종대왕 영릉 재실 재실은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9품) 등이 지내던 곳이다. 제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재실은 집무실인 재실, 제향을 분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 공간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원래 재실이 소실되어 1970년 성역과 사업 때 현 위치에 삼분과 행랑 제방 안채만 복원되었고 현재 재실이 본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2024. 2. 24.
세종대왕 영릉 조선 제4대 왕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1395∼1446)를 합장한 무덤이다.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446년(세종 28)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죽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무덤)의 서쪽 산줄기에 쌍실을 갖춘 능이 조성되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이고, 서쪽 방은 세종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하여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그러나 세조 때 영릉의 터가 좋지 않다 하여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나왔고, 1469년(예종 1) 현 위치로 옮겼다. 옛 영릉에 있던 상석·장명등·망주석·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어졌으나 197.. 2024. 2. 24.
빙산 2024. 2. 23.
태백산 주목 학명은 Taxus cuspidata S.et Z.이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며, 높이 17m, 지름 1m에 달하고, 짙은 녹색과 더불어 이식이 잘되므로 관상수로 흔히 재배하고 있다. 가지가 옆으로 퍼지고 줄기는 큰 가지와 더불어 적갈색이다. 잎은 한 개씩 나선상으로 배열되지만, 옆으로 뻗은 가지에서는 깃모양으로 배열된다. 잎은 선형으로 길이 1.5∼2㎝, 너비 3㎜ 정도이며, 끝이 갑자기 뾰족해지고 밑부분도 좁아진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에는 두 줄의 황색 줄이 있고 엽맥은 양쪽으로 튀어나왔다. 잎은 2, 3년 만에 떨어진다. 꽃은 암수가 한 나무에 달리고 4월에 핀다. 수꽃은 6개의 인편으로 둘러싸이고 8∼10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은 10개의 인편으로 싸이고 8, 9월에 빨간색으로 익는다. 종의(種.. 2024. 2. 20.
태백산 주목 학명은 Taxus cuspidata S.et Z.이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며, 높이 17m, 지름 1m에 달하고, 짙은 녹색과 더불어 이식이 잘되므로 관상수로 흔히 재배하고 있다. 가지가 옆으로 퍼지고 줄기는 큰 가지와 더불어 적갈색이다. 잎은 한 개씩 나선상으로 배열되지만, 옆으로 뻗은 가지에서는 깃모양으로 배열된다. 잎은 선형으로 길이 1.5∼2㎝, 너비 3㎜ 정도이며, 끝이 갑자기 뾰족해지고 밑부분도 좁아진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에는 두 줄의 황색 줄이 있고 엽맥은 양쪽으로 튀어나왔다. 잎은 2, 3년 만에 떨어진다. 꽃은 암수가 한 나무에 달리고 4월에 핀다. 수꽃은 6개의 인편으로 둘러싸이고 8∼10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은 10개의 인편으로 싸이고 8, 9월에 빨간색으로 익는다. 종의(種.. 2024.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