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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사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by KimPaulus 2024. 2. 28.

 

1995 8 7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한강 부근 해발고도 123m의 구릉 경사지에 형성된 선사 주거지로, 한국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1962년에 토기와 석기 등이 발견되었고, 서울대학교박물관과 고고학과에서 1972~1979년에 발굴하여 모두 16기의 집터를 확인하였다. 이들 중 3기는 구릉 동쪽 경사면에서, 나머지 11기는 서쪽 사면(한강 쪽)에서 발견되었다.

 

집터 크기는 작은 것은 5m×2.5m, 큰 것은 10m×4.2m 정도이다. 1977년에 발굴된 12호 집터는 맞배지붕을 하고, 39개의 기둥구멍이 3열로 배치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진흙을 다진 흔적이 있고, 화덕자리 3개와 저장구덩[貯藏冗] 7개가 있었다. 주거바닥에서 발견된 유물은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간돌검[磨製石劍] ·반달돌칼 ·바퀴날도끼[環狀石斧] ·돌도끼 ·외날돌도끼 ·돌살촉 등이다.

 

토기 안에서 탄화된 쌀(2) ·겉보리(2) ·(1) ·수수(1)가 발견되었는데, 쌀은 자포니카종() 중에서도 단립극소형(短粒極小形)임이 밝혀져 주목되었다. 이처럼 쌀 ·보리 등 여러 곡식을 재배하였음은 이 지역의 청동기인들이 당시에 이미 오곡(五穀)을 재배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또한 청동기시대 전기에 한강 유역에서 쌀이 재배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줄 뿐 아니라, 한국 벼의 전래 경로가 화난[華南] 지방에서 기원한다는 종래 일부 학자의 견해를 입증하는 것이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이 유적의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8~기원전 6세기, 즉 청동기 전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12호 집터에서 피홈식[血溝式] 돌칼이 나온 사실은 이곳 문화단계가 대체로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되면서도 그 실연대는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여주시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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