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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by KimPaulus 2024. 2. 26.

1447(세종 29) 수양대군과 김수온(金守温) 등이 석가모니의 가계와 그 일대기를 편역한 책. 책의 명칭 및 편찬동기와 간행시기, 그리고 편자에 대해서는 월인석보(별항) 1에 있는 <석보상절서()><어제월인석보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즉 서명의 '석보'는 석가의 일대기, '상절'은 요긴한 것은 상세히, 요긴하지 않은 것은 생략한다는 뜻이고, 편찬동기는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 대중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 위한 데 있으며, 내용에 관해서는 <월인석보서>에 승 우()와 도선(道宣)석가보· 석가씨보를 참고로 한 책을 만들어 이를 번역하여 만들었다고 했으니, 번역에 앞서 한문으로 된 책(漢文抄稿)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석보상절을 보면, 위의 두 석가보외에도 법화경· 아미타경등 여러 불경이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편찬순서는 팔상도(八相圖)의 도솔래의(兜率來義 ;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옴) · 비람강생(毘藍降生 ; 룸비니 동산에서 이 세상에 태어남) · 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대문으로 나가 봄) · 유성출가(踰城出家 ; 성을 넘어 출가함) · 설산수도(雪山修道 ; 설산에서 도를 닦음) · 수하항마(樹下降魔 ; 나무 아래에서 마군에게 항복을 받음) · 녹원전법(鹿苑轉法 ; 녹야원에서 설법함) · 쌍림열반(雙林涅槃 ; 쌍림에서 열반에 듦)의 순서를 따랐다.

 

이 책의 분량은 현전하는 권24의 내용으로 미루어 모두 24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자는 갑인자로 된 활자본이다. 당시의 활자인쇄술로 미루어 많은 부수가 간행되지 못하였을 것이며, 더구나 임진왜란 · 병자호란의 두 난리로 인해서 그나마 전해지던 책도 없어져서 현재 초간본은 권6 · 9 · 13 · 19 · 23 · 24가 각 1책씩 전할 뿐이다. 복각된 중간본도 권3 · 112책만 전한다.

 

그 소장처 및 영인상황은 다음과 같다. 316세기 중엽의 중간목판본으로 천병식(千柄植)이 소장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권6 · 9 · 13 · 19는 초간활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글학회에서 영인(1955)하였고, 1116세기 중엽의 중간 목판복으로 심재완(沈載完) 소장, 어문학회에서 영인(1959)하였고, 23 · 24는 초간활자본으로 동국대학교 소장, 동악어문학회에서 영인(1967)하였다.

 

석보상절이 학문적으로 갖는 가치는 첫째, 불교학적인 면에서 당시의 불교를 조직화한 것으로 조선초기의 불교학 수준을 말하는 것이며, 최초의 번역불경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둘째, 문학적인 면에서 국문으로 된 최초의 산문작품이지만, 세련된 문장이 유려하여 후대의 고전소설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셋째, 국어학적으로는 그 풍부한 어휘와 이에 따른 어법 · 음운 · 표기법 등 15세기 중엽의 국어연구 및 한자음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넷째, 서지학적으로는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최초의 국문활자본이란 점에서 값진 문화재로서 가치가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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