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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사

충주 문주리 석조 여래 좌상 및 5층 석탑

by KimPaulus 2024. 2. 12.

충주 문주리 석조 여래 좌상은 충주시 대소원면의 탑동마을에 있는 석불 좌상이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마을 가운데에 있으며 주민들이 흙벽돌로 보호각을 만들어 봉안하고 관리도 하고 있다. 충주 문주리 석조 여래 좌상은 편단우견의 항마촉지인 불상으로, 팔각 연화대좌와 광배가 함께 전한다. 그러나 석불과 광배는 대좌의 석질이 다르고, 조각 솜씨도 달라서 석불과 광배는 후대에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는 표현되지 않았다. 이마에는 백호공이 있으며, 얼굴에 비해 코는 크고 입은 작으며 눈은 반개한 모습이다. 양쪽 귀는 짧고 어깨는 약간 위로 올라간 모습이며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보인다. 법의는 편단우견인데 옷 주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게 처리하였으며 등 뒤에까지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고 있으며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대좌는 하대석과 중대석만 남아 있고, 상대석은 깨어져서 스님이 기거하는 집에 방치되어 있다. 상대석의 연화문은 불상과 달리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기단석에는 안상이 조각되고 하대석에는 복련을 돌려서 표현하였다. 광배는 불상 뒤편에 따로 떨어져 있으며, 원형의 석조 광배로 두광에는 중심 원좌가 있고 주변에 연화문을 두른 원광이 있다. 신광에는 2줄의 선을 융기시켰는데 주변에 화염문의 흔적이 보인다. 불신의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고 조각이 소략하지만 대좌의 조각은 뛰어나다.

 

석탑은 전체적으로 마모와 부재들이 결실되기는 했지만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었다. 기단부는 바닥에 판석형 지대석을 깔아 단층으로 마련하였다. 면석부는 판석형 석재를 결구하여 마련하였으며, 좌우 모서리에 우주를 모각하였다. 우주는 낮게 모각되어 형식화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갑석은 괴임이나 받침이 마련되지 않은 간략한 치석 수법으로 결구되었다. 탑신부는 일반적으로 탑신석과 지붕돌[옥개석]을 별석(別石)으로 치석하여 결구되었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석탑의 규모가 소형화되면서 일부 석탑의 경우 탑신석과 지붕돌을 동일석으로 치석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이는 고려시대 들어와 불교가 크게 성행하면서 다량의 석탑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장인이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치석과 결구 수법이 채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문주리 오층석탑은 1층의 경우 1층 탑신석과 지붕돌뿐만 아니라 2층 탑신석 일부까지 동일석으로 하여 보기 드문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석탑에 대한 신성성이 그만큼 상쇄되고, 기능적인 측면이 많이 중시되어가던 경향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탑신석과 지붕돌은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좌우 너비와 높이에서 일정한 체감율을 보이고 있어, 세장하지만 안정적인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탑신석 좌우에는 우주를 모각하였다. 지붕돌은 평박하게 치석하였고, 하부의 받침은 1층과 2층은 4단, 3층 이상은 3단으로 마련하였다.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도록 하였으며, 처마부는 두툼하게 치석하였다. 상륜부는 사각형 노반(露盤)과 원형 복발석(覆鉢石)이 올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 건립시에는 찰주(擦柱)를 세워 여러 부재들이 결구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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