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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사

백운암 철조여래좌상(보물 제1527호)

by KimPaulus 2024. 2. 2.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백운암에서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데, 원래 이곳에서 전하던 불상은 아니다. 인근에 고려시대 대규모 절터인 억정사지()가 있어서 그곳에서 옮겨온 불상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백운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창건 연기가 전하고 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는 충주 지방으로 피신을 왔고, 이때 무당이 곧 환궁할 것을 예언하였다. 예언대로 명성황후가 환궁을 하자 이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벼슬이 내려졌다. 어느 날 진령군의 꿈에 백의철불이 나타나 현재 백운암이 있는 곳에 안치해달라고 하였으므로, 1886년 그 자리에 백운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편단우견의 항마촉지인 여래좌상으로 규모는 87㎝ 정도로 크지 않은 상이다. 얼굴은 몸 전체에 비해 작은 편이나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고 근엄한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나발과 육계가 있고 그 경계에 중간계주의 표현이 보인다. 귀는 짧은 편이고 눈은 반개하여 일직선으로 표현하였으나 약간 부은 듯한 느낌을 준다.

얼굴에 비하여 코는 큼직하며 입에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어깨가 넓으며 가슴이 융기되었고,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이 넓어서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 몸은 전체적으로 양감 있게 조각되었다. 넓고 당당한 어깨에 비해서 허리는 가늘게 되어 있고, 법의는 편단우견으로 얇게 표현되어 풍만한 가슴과 불신 전체의 윤곽이 비교적 잘 드러나고 있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에서 몇 줄의 사선을 그어서 등 뒤로 처리하였고 오른손은 무릎에 두고 손가락을 밑으로 향하였다. 왼손은 무릎에서 두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장지를 약간 구부린 형태로 항마촉지인으로는 다소 특이한 자세이다. 근래에 몸에 있던 호분을 벗겨내고 보존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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