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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밀로의 비너스

by KimPaulus 2019. 7. 16.



이런 미메시스라는 고대 그리스 예술의 이상이 잘 표현된 작품이 바로 「밀로의 비너스」이다. 이 작품은 아름답고 완벽한 균형을 가진 몸매로 인해 미()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미의 전형으로 언급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몸의 뼈대와 근육을 표현한 완벽한 해부학의 도입이다. 둘째는 몸의 무게 중심을 한쪽 다리에 둠으로써 나타나는 S자 곡선이다. 이 곡선이 인간의 신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이다. 셋째는 팔등신()의 신체구조이다. 팔등신은 키가 머리 길이의 8배를 이루는 몸을 말하는 것으로 이른바 황금 비율이라 부른다. 이 비례법은 특히 여체를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신체 비율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목적으로 한 기법들이다.

이런 기법들은 원형이라는 실제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이를 보다 아름답고 숭고하게 표현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표현 기법들로 오랜 세월 동안 서구 예술에 있어 거역할 수 없는 법칙이며 규범이 되어 왔다. 그리고 이런 기법에 의해 지고한 아름다움을 드러낸 작품을 예술의 모범이며 규범이 된다하여 '고전()'이라고 부른다.

우선 「밀로의 비너스」의 얼굴을 보면, 수려하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띈다. 또한 목주름과 약간의 지방질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복근 등 세부 모습들이 세밀한 관찰과 해부학에 의거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비너스의 커다란 눈은 맑고 순수한 마음의 상태를, 오뚝한 콧날의 코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작고 굳게 다문 입은 단호함을, 갸름한 얼굴은 미적 이상을, 단정한 머릿결은 흐트러짐 없는 성격을 보여준다. 가슴의 모습 또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절한 볼륨과 크기를 지니고 있음에, 이런 모습은 실제 인간세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형상이다. 이른바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전형으로서의 이데아의 모방이 아닌가?


이런 상체에 비해 허리 아래의 하체는 좀 다른 구조를 보이고 있다. 허리는 요즘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인 개미허리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굵고 두툼하다. 천으로 가려졌지만 크고 굵은 엉덩이와 허벅지를 감지할 수 있다. 상체가 지고한 이상미를 보인다면, 하체는 육감적 욕망과 연관된 세속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해부학과 콘트라포스토, 황금분할법으로 표현된 상체의 모습이 플라톤의 이데아에 입각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면, 하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적 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질료적 미란 현실의 자연인 동시에 아이를 생산하는 능력이라는 본질로서의 자연을 말한다. 생명의 잉태와 생산은 가냘픈 모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모습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특히 비너스의 아랫배를 보면 도독하게 부푼 것이 잉태의 숭고한 능력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하체의 속성은 상체에 비해 현실적이며 세속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런 비너스의 모습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미적 이상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최고미로서의 예술적 아름다움이란 이데아적 현실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성에 입각한 지고한 아름다움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 지고한 육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육상을 생활화하고, 하루 일정량의 노동을 의무화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런 지고한 아름다움의 목적은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 아름다움은 단순한 눈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전한 정신을 갖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른바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인간 삶의 기본적 원칙을 드러낸 것으로, 달리 말해 정신과 육체의 하나 됨,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형식이란 미()이며, 미가 담고 있는 내용은 선()이다. 그리스인들은 바로 최고미라는 아름다운 형식을 통해 선이라는 도덕관념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가 선의 관념을 목적으로 하여 그 완전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는 그리스인들의 이상이 진선미()의 일치라는 관념을 통해 꽃피우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로써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통해 나타난 사실적 이미지는 결국 진선미라는 형식과 내용의 일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미적 이상을 가능하게 한 것이 비례법과 해부학 등의 인위적 기법으로, 이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즉, 이런 이성의 산물로서의 기법들은 최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며, 그 최상의 아름다움이란 인간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규범과 도덕을 추구하는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이성에 입각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신과 문화는 다분히 인간 중심적이며, 그 인간적 이성이란 결국 인간 삶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 사고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 예술의 사실성은 결국 인간 스스로의 판단력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런 합리적 사고의 인간 이성은 16세기 르네상스를 거쳐 서구 문화와 예술의 저변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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