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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탈리아 다비드상

by KimPaulus 2019. 5. 24.

 

 

 

 

제작배경

1501년 5월 미켈란젤로는 공화정이 수립된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로 돌아온 뒤 그 해 8월부터 새로운 도시를 위한 예술 작품을 제작한다. 이를 위해 시에서 제공한 5.5미터의 거대한 대리석은 일찍이 서투른 조각가에 의해 망가져 피렌체의 작업장에 40년 가까이 방치되어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이 다루기 곤란한 대리석으로 힘이 넘치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조각 <다비드상(David)>(1504)을 만들어내었다. <다비드상>은 5.17미터의 대리석 조각으로 골리앗(Goliath)을 돌로 때려 쓰러뜨린 성서의 소년 영웅 다비드를 표현한 것이다. 본래 이 작품은 피렌체 대성당(Duomo di Firenze)의 동쪽 지붕에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시청 앞 시뇨리아 광장(Palazzo della Signoria)에 세워져 1504년 9월 8일에 공개되었고 국가의 영광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이후 1873년에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Accademia Gallery)으로 옮겨졌으며 원래의 자리에는 복제본이 세워졌다.

주제 및 표현기법

오랫동안 피렌체 시민들에게 성서 속 다비드는 작지만 강한, 승리의 인물로서, 교황과 황제의 세력을 견제하고 도시의 독립을 지킨다는 상징이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바로 이러한 피랜체의 독립과 자유 민권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기존의 조각가들,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나 베로키오(Verrocchio, 1435-1488), 카스타뇨(Andrea del Castagno, 1423-1457)의 다비드와는 다른 모습이다. 기존의 다비드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승리의 순간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다비드상>은 승리를 거둔 모습이 아니라 전투를 결심한 전사의 엄숙한 결의와 긴장감을 표현한 것이다. 단호하고 바짝 경계하는 모습의 소년 다비드는 투석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균형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신체 구도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를 통해 안정감을 보여준다. 콘트라포스토 자세는 고대 조각 작품의 형태를 반영한 한쪽 다리에 몸 전체 무게를 지탱하고 나머지 다리는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뒤로 뻗은 다리는 안정된 자세와 동시에 행동 직전의 반동 자세를 나타낸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고개는 왼쪽으로 돌리고 왼쪽 팔로 왼쪽 어깨에 투석기를 짊어졌으나 인물의 엉덩이와 어깨를 반대 각도를 향하여 몸의 형태가 전체적으로 S모양의 곡선이 되었다. <다비드상>의 다소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들 중 이례적인 것으로, 머리와 손, 특히 오른손의 크기는 전체 신체에 비해 유난히 거대하다. 이는 작품이 본래 대성당의 지붕에 위치할 것을 감안한 것으로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고려한 것이다.

다비드의 발가락은 실제보다 크게 표현되어 전투를 목전에 둔 긴박한 상황을 강조한다. 목의 핏줄은 팽팽하게 부각되었고, 꽉 다문 입과 찡그린 눈썹, 깊은 주름은 내적 긴장을 표현한다. 특히 다비드의 눈은 먼 곳의 특정 대상을 강렬하게 응시하는 듯 보인다. 한편 다비드의 남근은 유대식 전통과는 달리 할례()를 받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는 르네상스 시기 지속되었던 예술 관습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일찍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한 그 수준을 뛰어넘은 르네상스 작가로 평가된다. 그의 <다비드상>은 르네상스 조각 작품을 대표하며 젊은 육체의 아름다움과 힘을 상징하는 예술 작품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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