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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

by KimPaulus 2019. 5. 27.

 

 

 

 

 

 

 

 

 

 

 

 

 

 

서기 79824,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로마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폼페이(Pompeii)와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그리고 이 지역의 많은 주택들이 화산재에 묻혀버렸다. 이 지역은 18세기 중반부터 발굴되기 시작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상업 도시 폼페이의 광막한 공간은, 폼페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보존상태가 좋은 휴양지 헤르쿨라네움의 유적과 대비를 이룬다.

 

화산이 폭발하기 며칠 전부터 베수비오 산은 이미 대재앙을 예견한 듯 사람들을 향하여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재앙을 느낀 시민들은 몸을 피해 다른 도시로 향했고, 한편에서는 불의 신 불카누스의 노여움을 풀어 주기 위하여 성대한 제사를 올렸다. 하지만 불의 신 불카누스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서기 79824, 베수비오 산에는 이른 아침부터 역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구름이 커지면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오프론티스 지역은 물론이고 캄파니아 해변을 따라 자리한 항구 도시 미세눔과 나폴리 지역까지 땅이 흔들리고 구름 띠가 퍼졌다. 많은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마음을 조이고 있었고 미세눔에 살던 로마 지중해 함대 사령관 플리니우스는 화산 활동을 보다 가까이에서 관찰하기 위하여 조카에게 폼페이로 가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조카인 플리니우스 2세는 학업 때문에 삼촌을 따라나설 수 없었다. 플리니우스는 노예와 부하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사람들이 빠져나오고 있는 폼페이를 향하여 이동했다.

 

플리니우스가 폼페이 항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베수비오 산은 회색 분진(화산 폭발에서 생긴 작은 미세 먼지)과 크고 작은 암석,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용암을 토해 내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플리니우스는 폼페이로 향했고, 결국 유독 가스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플리니우스가 숨을 거둔 뒤에도 분진은 끊임없이 분출되어 결국 도시 전체를 덮어 버렸다. 고대 로마의 아름다운 휴양지 폼페이는 이렇게 긴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날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폼페이는 2000여 년 동안 화산재와 용암에 묻혀 있었다. 그러다가 1748년 발굴이 시작되면서 폼페이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폼페이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탄성으로 보내야 했다. 건물의 지붕과 벽은 엄청난 화산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지만, 나머지 부분은 화산 폭발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폼페이가 옛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두께로 쌓여 있던 화산재 덕분이다. 여러분은 화산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쌓인 돌과 화산재가 아파트 3층 높이까지 덮여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나요? 화산재는 장소에 따라 1m가 조금 넘는 곳부터 7m가 넘게 쌓인 곳까지 있었는데 평균 높이가 6m나 되었다고 합니다.

 

발굴 작업이 진행되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점점 더 드러났고, 그중 하나가 화산이 폭발할 당시 폼페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화석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날아온 돌과 용암, 화산재, 유독 가스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적어도 2000명은 된다고 한다.

 

지금 폼페이를 찾는다면 귀족의 별장을 비롯하여 시민들의 주택, 극장, 도로, 수도관, 상점 등 2000년 전의 흥미로운 장소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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