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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풍경 무늬 정병(고려 12세기)

by KimPaulus 2024. 1. 3.

 

청동으로 만들어진 국보(옛 지정번호 국보 제92호) 물가풍경 무늬 정병을 처음 보게 되면, 정병 전체를 뒤덮고 있는 초록색 표면에 먼저 눈길이 가게 된다. 금속 재질의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원래부터 그런 색이었다고 오해하기 쉽다. 문화재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 중에서도 언뜻 색깔만 보고 청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일 먼저 우리 눈에 띄는 초록색은 세월이 남긴 흔적으로, 바로 청동이 부식된 녹이다. 바탕 재질인 금속을 부식시키는 녹이 이 정병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한다는 점은 사실 모순이다.

 

정병 몸체를 보면 버드나무나 갈대가 자라는 섬들이 점점이 놓여 있고, 섬 주변 물가에는 새들이 여기저기서 헤엄치고 있다. 또한 새들 사이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있으며, 저 먼 하늘에는 줄지어 어딘가로 날아가는 새들이 보인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이 장면들은 몸체에 홈을 낸 다음 0.5밀리미터 굵기의 얇은 은사를 그 안에 끼워 넣어 장식하는 은입사 기법으로 표현된 것이다. 지금은 은사도 녹이 슬어 검게 보이지만, 처음 만들었을 때는 어두운 바탕 위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은사가 이 무늬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과연 고려시대를 대표할 만한 섬세한 금속공예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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