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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사

한지 공예

by KimPaulus 2017. 12. 19.

 

 

 

 

종이 공예는 민간에서 발달한 실내 문화이다. 한지로 일상생활의 소도구를 만들거나 사용하면서 형성된 종이 공예는 가정용 소품 공예였다. 종이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겨 되풀이 사용하던 선조의 생활 정신과 검소한 마음을 담고 있다.

종이 공예품은 각종 상자를 비롯하여 지도, 종이꽃, 지승 용기 등으로 다양하다. 특히 한지를 꼬아 만든 지승 공예는 그 형태와 용도가 다채롭다.

중국 후한 말인 105년에 채륜이 처음으로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고,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인 삼국 시대였다. 통일신라 시대의 불경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그 시대의 종이 질이 상당히 좋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종이는 아주 두껍고 닥나무의 섬유질 외에도 비단 섬유를 재료로 사용하였다. 비단 섬유는 종이를 강하게 하기 위해 섞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한지를 조선지 또는 고려지라 불렀는데, 기록에는 대개 고려지로 표기되어 있다. 고려지 중에서도 특히 옥색 취지, 비단 종이, 도련이 매끄러운 백수지 등이 높이 평가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질 좋은 한지는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하여 귀했던 탓이다. 그래서 종이를 함부로 낭비하지 말도록 했고, 버드나무나 마 줄기를 섞어서 만든 잡추지 같은 허술한 것을 사용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닥나무가 한지 원료로 사용된 것은 우리나라에 종이가 처음 전해졌을 때부터로 보인다. 처음에는 뽕나무 껍질 같은 것도 같이 사용된 듯하나 흐물거려 닥나무가 종이 원료로 쓰였다. 닥나무는 호남 지방에 먼저 전해져 그곳에서 많은 양이 재배되었다. 한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전주 한지가 생겨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지 제작 과정의 첫단계는 닥나무를 잿물에 넣어 삶아 나무껍질을 벗겨 내는데 표피를 떼 내고 안쪽 껍질만 바로 떼어 잿물을 걸러 낸다. 이 공정은 잿물을 사용하므로 물이 좋아야만 양질의 종이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한지를 뜨는 곳은 주로 물이 좋은 강가에 있었다. 그다음 잘 삶아진 닥나무 껍질을 반죽하여 절구통에 넣고 방망이로 찧어서 섬유질을 길게 늘인다.

그다음은 물뜸 작업이다. 나무로 만든 치통에 물을 넣고 충분히 두드려서 넓게 펼친 닥나무 껍질을 여과시킨 다음 거기에 닥나무 액을 넣고 흔들어 섞는다. 이때 닥나무 액은 풀과 같은 작용을 한다. 종이를 뜬 발을 치통 위에 올려놓고 쌀을 일듯 흔들어 얇게 종이를 펼친다. 이렇게 펼쳐진 종이를 습지판에 놓고 일단 물기를 뺀 다음 가느다란 방망이로 한 장씩 얇게 말아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걸어 놓고 말린다. 바싹 마른 종이는 다림질하듯 늘여 부드럽게 두드리면서 완성시킨다. 색지를 만들려면 물뜸 작업을 할 때 치통에 천연 염료를 풀어 염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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