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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

신륵사

by KimPaulus 2015. 7. 9.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의 남한강변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절 이름인 '신륵(神勒)'에서 륵()은 굴레를 뜻한다. 고려 우왕 때 인근의 마암(馬巖)에서 용마(龍馬)가 나타나 행패를 부리자 미륵불 또는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이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에서 신륵사란 절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아마도 지세가 약한 곳에 절을 세워 불력(佛力)으로 남한강의 범람을 막아보고자 했던 바람에서 유래한 설화로 추측된다.

 

1376, 고려말의 고승 나옹은 회암사의 주지로 중창불사를 했다가 탄핵을 받아 유배를 떠났는데, 유배길에 신륵사에 들렀다가 그대로 입적하였다. 나옹의 제자들은 스승을 그대로 신륵사에서 화장한 뒤 나온 사리를 회암사와 신륵사에 나누어 부도탑(보제존자석종)을 조성했다.

 

조선불교계는 나옹의 스승인 범승(인도 승려) 지공(指空), 나옹, 그리고 두 승려의 공동제자인 무학을 3화상(三和尙)이라고 부르며 불교의 조사(祖師)로 추앙하였고 민간신앙의 대상으로도 여겼다. 그리하여 나옹이 입적한 신륵사에도 조사당(祖師堂)을 세워 3화상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1469(예종 1)에 세종의 영릉이 여주로 이장됐는데 이때 영릉의 원찰(願刹, 능침사찰)에 대한 얘기가 나오다가 신륵사를 원찰로 하자는 건의가 나와 왕실의 발원으로 1472년부터 대규모 중수를 시작했다. 이때 절의 이름을 보은사(報恩寺)로 바꾸기로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계속 신륵사로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전탑이 있어서인지 고려시대에는 '벽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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