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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2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보물 제658호) 청룡사 옛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인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보각국사 혼수(1320∼1392)는 도를 지킴에 조심하고, 특히 계율을 따를 것을 강조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2세에 출가하여 22세 때에는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29세 때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청룡사로 옮겨가 머물렀다. 여러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조선 태조 1년(1392) 청룡사로 돌아와 73세에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내려 ‘보각국사’라 하고, 탑이름을 ‘정혜원융’이라 하였으며, 청룡사에 대사찰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비는 1장의 돌로 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돌이 서 있는데, 위로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접듯이 깎아 마무리해 놓았다. 조선 .. 2024. 1. 29.
청룡사 위전비 200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청룡사의 창건 및 경영 등과 관련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을 적은 위전비이다. ‘위전(位田)’이란 사찰이나 관청, 학교 등의 경영에 필요한 토지를 말한다. 현재 머리 부분의 옥개석이 일부 파손된 것을 제외하면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한 도승(道僧)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도승이 이 근처를 지나다가 공중에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주변 산세를 살피니 풍수지리설상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의 길지였으므로,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절을 짓고 청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1392년(태조 1) 보각국사(普覺國師) 혼수(混修)가 이 절에서 입적하자 태조가 절을 중창하도록 명하였다... 2024.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