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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곡관(영남 제2관문)

by KimPaulus 2024. 1. 24.

 

조선초기에는 관료들과 양반들만이 넘나들 수 있던 길이어서 신분이 낮은 서민들은 꼭 한 번 걸어 보고 싶은 동경의 길이기도 하였습니다.

훗날엔 양반세력 뿐만 아니라 보부상을 비롯한 서민들 역시 이 길을 다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이곳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왜군을 막지 않고 충주 탄금대로 후퇴하여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대패하고 말았던 안타깝고 아쉬움이 묻어 있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근세에 들어와서 천주교 박해로 수많은 신도들의 한이 맺힌 길이기도 합니다.

 

총 길이 10km인 문경새재는 외침에 대비하여 세 개의 관문을 두었습니다.

세 관문 중 제 2관문인 조곡관을 시작으로 1관문과 3관문이 세워졌습니다.

 

2관문인 조곡관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 271594년에 충주사람 수문장 신충원이 게릴라 전을 펼치기 위하여 이 곳에 처음 쌓았던 성이었습니다. 새재 삼관문 중 제일 먼저 세워진 관문입니다.

 

그 후 숙종 34(1708) 이 곳이 군사적 요충지임이 재확인되어 조령산성을 쌓을 때 신충원이 쌓은 옛 성을 보수하고 조동문이라 이름지었습니다. 이 때 추가로 일관문과 삼관문도 함께 축성되었습니다.

 

삼관문에서 내려오다가 만나는 현재의 2관문은 그 후 1907년 을미의병 때 화재로 폐허가 된 것을 문화재로 지정된 후 1978년에 누각과 석성을 복원해 놓은 것입니다.이 때부터 2관문을 조동문에서 조곡관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문경새재 1관문부터 잘 닦인 도로를 따라 2관문을 거쳐 3관문을 넘는 고갯길은 옛 길의 향수를 달래며 과거 선조들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며, 주변에 솟은 거대한 기암 산봉우리들과 수려한 계곡 풍경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실로 문경쪽으로는 조령산, 신선암봉, 주흘산, 부봉 등의 수려한 기암봉들이 새재길을 감싸 안고 있으며, 삼관문을 넘어와 충북 괴산으로는 신선봉과 마폐봉이 새재길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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