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경

단양

by KimPaulus 2023. 9. 12.

 

충청북도의 군. 충청도에서는 가장 인구가 적으며 인구 밀도도 가장 낮고, 인구감소율 역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총 면적은 780.16이며, 군청 소재지는 단양읍 별곡리 300(단양군 단양읍 중앙110)이다. 북서쪽으로 제천시, 남쪽으로 경상북도 예천군, 문경시, 남동쪽으로 경상북도 영주시, 북동쪽으로 강원도 영월군과 접한다. 영주시와 근접해 있고 중앙고속도로가 뚫려있지만, 월악산, 소백산 협곡으로 막혀있는 도시이기에 이 곳과는 접근성이 좋지 못하다. 반대로 북서쪽의 제천시와는 지리적으로 특히 가까울 뿐더러 시멘트 산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한 동네와 다름 없는 곳이다. 실제로 단양군과 경계를 맞닿은 제천 시내와 단양 읍내는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제천시 시내버스, 단양군 농어촌버스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충청도의 최동단 기초자치단체이기도 하다.

 

지금의 단양군은 옛 단양군에 영춘현이 병합된 곳이다. 단양읍, 매포읍, 대강면, 적성면, 단성면은 옛 단양군 지역이다. 영춘면, 가곡면, 어상천면 일대는 옛 영춘현 지역에 해당한다.

 

이래 봬도 백제, 고구려, 신라의 통치를 모두 받아 본 유서 깊은 동네이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속했다. 삼국 시대에는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고구려에 병합되어 고구려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현(赤城縣)이 되었다.

 

장수왕 사후 고구려가 약화되고 신라, 백제가 힘을 되찾자 6세기 중반 이 지역을 둘러싼 삼국의 경쟁이 발생했고, 550년 신라 진흥왕의 명을 받은 이사부 장군이 독살성-금현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신라 영토로 고착되었다. 또한 이때(545550) 단양 신라 적성비가 세워졌다.

 

남한강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을 점령한 신라는 강상수군으로 한강 유역을 순식간에 점령할 길을 얻었고, 결과적으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게 되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757(경덕왕 16), 행정구역 개편 때 이름은 그대로 적산현으로 하고 인근 내제군(奈堤郡:현재의 제천시)의 속현이 되었으며, 95소경 중 삭주에 속했다.

 

고려 때인 940년에는 단산현(丹山縣)으로 고쳤다. 1018(고려 현종 9) 원주에 속했다가 뒤에 충주로 이속되었다. 1318(충숙왕 5) 단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413(조선 태종 13) 단양군이 되었고, 1895(고종 32) 충주부(忠州府)가 관할하다가, 19144월에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하여 현재의 단양군이 되었다.

 

한편 영춘군은 고구려의 을아단현(乙阿但縣)[8]이다. 신라 경덕왕 때 자춘(子春)이라 개칭하여 내성군(奈城郡:현재의 제천시)의 영현이었다. 고려 때 영춘으로 고쳐서 원주(原州)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들어 1399(정종 1) 충청도에 이관하였다. 1413(태종 13)에 현감을 두었다. 1895(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영춘군이 되어 충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충청북도에 속했다.

'주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 위에서  (0) 2023.09.23
석양 기차  (0) 2023.09.21
남한강 건지마을 노을  (0) 2023.09.08
강변에서  (0) 2023.09.04
수상스키  (0) 2023.08.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