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경

음성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성당

by KimPaulus 2018. 9. 28.

 

 

 

 

1896917일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초대 신부는 부이용 가밀로 신부이다. 원래 부엉골 본당에 부임한 부이용 신부는 본당의 위치가 적당치 않음을 깨달은 후, 장호원 매산 언덕에 한옥을 매입하여 부엉골 본당을 폐지하고 장호원으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일제 말기 프랑스 선교사라는 이유로 연금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연금에서 풀려나, 감곡 본당의 제4대 주임신부로 다시 돌아와 재임하였다. 감곡 본당은 충청북도의 모본당으로서 많은 자본당을 낳았으며, 1986년 본당 설립 90주년을 기념하여 성모 동산을 정비하고 부이용 신부의 입상을 제작하는 한편, <감곡 본당 90년사>를 편찬하였다.

 

199615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전국에서 18번째, 충청북도에서는 최초로 건립된 성당이다. 임오군란 당시 충주목사(忠州牧師)로 있던 민응식(閔應植)의 집이 있던 곳이다. 민응식(1844~?)은 명성황후의 6촌오빠로, 민태호(閔台鎬) 등과 함께 수구파(守舊派)의 중심이었던 인물이다. 1882(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자기 집을 명성황후의 피신처로 제공하였는데, 당시 그 집은 109칸 넓이의 대궐 같은 집이었다고 한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弑害)되고 민응식이 서울로 압송된 후 의병들이 그 집을 점거하고 사용하였다. 이로 인하여 이 집은 주위의 집들과 함께 일본군의 방화로 건물의 대부분이 불타버렸다. 그후 임가밀로 신부가 이 집터를 싼값에 구입하여, 1930년 지금의 고딕식 성당을 건립하였다. 화강암으로 된 2층 건물인 사제관은 성당이 건립된 4년 후인 1934년에 지은 것이다.

 

성당은 프랑스 신부인 시잘레가 설계하였고, 공사는 중국 사람들이 맡았다. 길이 40m, 넓이 15m, 종탑높이 36.5m의 고딕식 건축물은 명동성당의 축소판 같은 인상을 준다. 내부의 천장은 원형 돔이며, 중앙제대(中央祭臺)와 옆면에 4개의 소제대(小祭臺)가 있다. 내부 정면 위에 모셔진 성모상(聖母像)에는 6.25전쟁 중에 생긴 7발의 총탄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주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 일몰  (0) 2018.09.30
연풍성지  (0) 2018.09.29
정자 너머에는  (0) 2018.09.28
폭포  (0) 2018.09.27
남산 일출  (0) 2018.09.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