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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

첨성대

by KimPaulus 2014. 12. 14.

 

첨성대는 신라의 왕궁이 있었던 월성 북편에 위치하고 있다. 362개의 화강암 벽돌을 사용하여 원통형으로 축조하였다. 높이는 9.17미터로 바탕의 지름은 5.17미터, 상층부의 지름은 2.5미터이다. 2미터에서 4미터의 고려와 조선시대의 현존 천문대보다 큰 규모이다.

 

2층의 기단이 있고, 대략 30센티미터 두께의 돌로 27층을 쌓았으며, 꼭대기에는 다시 우물 정() 모양의 2층의 천장돌이 있다. 13층에서 15층에 이르기까지 정남향의 네모난 문이 있고, 이 문의 아래로 12층이 있고 위로 13층이 있으므로 첨성대 위아래의 중간에 문이 위치한다. 내부에는 12단까지 흙이 채워져 있고 여기에 사용된 돌의 수는 362개이다. 내부에 19단과 20, 25단과 26단이 장대석을 이루고 있다.

 

 2005년 언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북쪽으로 7.2센티미터, 동쪽으로 2.4센티미터 정도 기울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원인은 북동쪽 지반이 무르고 수분이 많은 탓으로 보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은 한국 전쟁 이후 기울어짐이 심해졌으며 당시 북쪽의 도로를 지나던 탱크 등에 의해 지반이 약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우려할 수준은 아니며, 국내외 연구진에 의한 연구 결과 또한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첨성대는 천문 관측을 위해 지어졌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나, 수미산 또는 우주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라는 주장이 있다.

 

첨성대는 그 위에 목조 구조물이 세워져 혼천의(渾天儀)가 설치되었으리라는 생각과, 개방식 으로서의 관측대라는 견해도 있다. 첨성대는 창문을 제외하면 어느 방향에서나 같은 모양이며, 계절과 태양의 위치에 관계없이 일구(日晷)를 측정하여 시간을 헤아릴 수 있으므로 4계절과 24절기를 확실히 정할 수 있다. 정남(正南)으로 열린 창문은 사람이 사다리를 걸쳐 놓고 오르내리는 데도 쓰였지만, ·추분(·秋分)에 태양이 남중(南中)할 때 이 창문을 통하여 태양광선이 바로 대() 안의 밑바닥까지 완전히 비출 수 있는 위치에 열려 있다. 그러므로 동·하지(·夏至)에는 창문 아래 부분에서 광선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므로 분점(分點)과 지점(至點) 측정의 보조역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절기의 정확한 측정에 의하여 역법(曆法)을 바로 잡기 위한 측경(測景)을 목적으로 설립된 규표(圭表), 즉 측경대로서 일구를 측정하는 천문대일 뿐 아니라, 신라 천문관측의 중심지로서, 신라 천문관측에서 자오선과 동서남북 4방위의 표준으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첨성대는 그 구조가 상징하는 바 하늘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 가설인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에 의거하여 축조되었으리라고 해석되고 있으며, 27단으로 이루어진 것은 선덕여왕이 27대 왕임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천상(天象)의 이변(異變)이 있을 때 외에는 이러한 목적을 위한 상설 천문대로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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